▲ 매일 점검했던 팽나무와 엘리베이터를 찾은 김우천 팀장

“내가 상상하고 계획했던 그림과 준공 후 실제 모습이 일치할 때의 희열, 그것이 내가 호텔리어로 35년간 근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12월 14일은 조선호텔의 특별한 하루였다. 새로운 총지배인이 부임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선임된 총지배인은 조선호텔 직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었다. 바로 35년간 조선호텔에서 근속한 시설팀의 김우천 팀장이었다. 일일 총지배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총지배인실에서 만난 김우천 팀장은 지난 긴 세월을 천천히 되짚어보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 함께 일한 후배들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김우천 팀장

날이 조금 흐렸다. 조선호텔 로비에 들어서는데 낯선 느낌이 들었다. 소파가 있던 자리가 휑하니 비어져 있었다. 덕분에 로비는 한층 더 넓어보였다. 인터뷰이가 특별했기 때문에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어쩌다 방문하는 나조차 사소한 변화에 민감한데, 35년간을 한 공간에 머물렀던 이의 마지막을 담아야 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 보다는 훨씬 밝은 미소로 그를 만났다. 인터뷰이는 35년간 조선호텔에서 근무한 시설팀의 김우천 팀장이었다.

“1981년에 조선호텔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작은 기업에서 시설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좋은 자리가 있다며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라고 조언해주었지요. 그래서 학원에 다녔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조선호텔 자리를 추천받게 됐습니다. 그렇게 긴 여정이 시작됐지요.”

1981년 10월 첫 출근을 하던 날을 김우천 팀장은 기억했다. 1970년도에 리뉴얼한 호텔이니 그가 입사한 날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시설이었다. 호텔은 공간 활용에 있어 가장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 공간에 대한 종합적인 사고가 없이는 훌륭한 호텔이라고 불릴 수 없다. 숙박은 기본이고 식사와 세미나 등 다양한 용도로 호텔을 찾는 각각의 고객에 맞는 공간을 불편함 없이 구성하다 보니 끊임없이 공사가 이뤄지는 곳이 호텔이기도 하다.

▲ 일일총지배인으로 프런트에 방문한 김우천 팀장

“입사한 날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고객 컴플레인을 모두 인지하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리노베이션이 진행될 때마다 고객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지요. 리노베이션은 시설의 노후로 비롯되기도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개선을 통해 매출 상승으로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내야하기 때문이죠.”

엔지니어링을 담당한 김우천 팀장은 초창기 고객 불만이 가장 많았던 냉난방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여기에 조선호텔을 방문하는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은 객실 온도에 저마다 반응이 달랐다. 특히 환절기면 냉방을 요구하는 손님과 난방을 요구하는 손님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냉난방을 원활하게 하려면 ‘4파이프’ 시스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호텔은 대부분 ‘2파이프’라 냉방과 난방 둘 중 하나만 가능한 상태였죠. 겨울철 냉방을 원하는 고객에게 선풍기를 가져다주던 것이 옛날 방식이었습니다. 겨울철에 냉방을 틀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면 족히 100만 원이 넘었습니다. 객실값을 안 받는 게 더 이득인 경우죠. 그렇다고 4파이프를 설치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개선하고자 오래 연구한 끝에 ‘2파이프 시스템 + 일
렉트릭 히터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김우천 팀장은 기존의 2파이프는 냉방을 담당하고 일렉트릭 히터를 통해 난방을 통제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임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4중의 안전장치도 포함시켰다. 이 방식은 국내 최초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 도입되어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 나인스게이트그릴에서 와인 상태를 점검하는 김우천 팀장

“시설팀으로 입사해 현재 시설팀장으로 있지만 계속 한 곳에만 머무른 건 아니었습니다. 1995년 신규사업개발팀 소속이 되어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기억에 남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물어보자 그가 처음 기억한 건 1997년 1차 객실 리뉴얼이었다. 호텔 5층부터 14층까지 3차에 나눠서 진행된 큰 프로젝트였다. 해외에서 수입한 고급자재를 일부 사용하는 공사를 앞두고 맞이하게 된 IMF외환위기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 놓였었다. 이 당시 김우천 팀장은 매일 은행으로 출근해 환율을 체크하며 간신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그랜드 볼룸의 확장공사였다. 공사 준비만 8년, 기존 250명 규모의 연회장을 400명 규모로 확장하는 일이었다. 기존 그랜드볼룸의 기둥으로 인해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지 못하는 점을 개선하고자 지붕을 뚫고 크레인을 이용해 잘라낸 기둥을 옮기는 대공사였다.

“공사를 시작한 12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걸리는 공사였습니다. 지붕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계속 열어두는 수 밖에 없었지요. 걱정은 눈이나 비가 내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랜드볼룸 아래에는 영업장이 있었기에 바닥에 방수처리를 하고 매일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공사를 진행했지요. 정말 천운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게, 공사를 하는 3개월간 단 한 번도 비나 눈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기둥을 모두 드러내고 지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그 해 첫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요.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 단 한 분도 불편함 없이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새로이 개선된 피트니스센터를 확인하는 김우천 팀장

김우천 팀장이 기억하는 또 하나의 어려운 프로젝트는 이른바 ‘심봉사 프로젝트’라 불린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 리노베이션이었다. 다른 경쟁 호텔들의 뷔페 레스토랑이 창밖으로 화려한 풍경을 자랑했던 것과 달리 반지층에 위치한 아리아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는 아리아 창밖으로 아름다운 정원을 조성해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로 결심했다. 설득이 힘들었던 프로젝트지만 완성되었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탁 트인 뷰는 고객들의 성원으로 매출이 기존보다 1.5배나 늘었다. 닫혀있던 아리아가 창을 통해 눈을 떴다 하여 붙여진 ‘심봉사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참 적절하다는 느낌이 드는 결과였다.

“2014년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아리아 정원에 심을 100년된 팽나무를 찾았습니다. 내륙에 있는 팽나무는 굴곡이 없어 조선호텔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지요. 그래서 해풍을 견뎌낸 팽나무를 제주에서 찾았습니다. 팽나무는 잎이 너무 무성하지도 않고 고요하면서 늘 한결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에 조선호텔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따뜻한 제주와 다소 추운 서울의 환경 탓에 잘 자라지 못할까 걱정이 많았지요. 그래서 매일 나무를 보러 다니는 일이 일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4월이면 잎을 피우는 팽나무. 나무도 사람처럼 오래될수록 그 잎을 피우는 시기가 다소 늦어진다는 걸 김우천 팀장은 깨달았다고 한다.

▲ 객실 컨디션을 점검하는 김우천 팀장

김우천 팀장이 피운 마지막 숙원은 엘리베이터 공사였다. 오랜 고객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것이 바로 주차장 엘리베이터였다. 기존의 주차장 엘리베이터 2대는 지하 1층까지만 연결되어 있어 지상까지 한 층 걸어 올라와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고객은 어느새 나이가 들어 그 한 층의 걸음 을 힘겨워하기도 했다. 또 장애를 가지고 있는 고객들에게도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선호텔은 문화재인 환구단 터에 있어서 공사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문화재에 영향이 없게 ‘현상 변경 허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김우천 팀장은 엘리베이터 공간을 확장하지 않는 선에서 2016년 공사 허가를 받아냈다. 단 기존의 2대 운영하던 엘리베이터를 1대로 줄이고 지상층까지 올리는 조건이었다. 그간 2대를 이용하다 1대를 이용하게 되어 불편해할 고객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기존 분당 45m였던 엘리베이터 속도를 분당 90m가 가능하도록 교체했다. 매일 주차장에서 이상 없이 엘리베이터가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김우천 팀장은 그에게 참 편해졌다고 말을 건네는 고객이 있어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호텔리어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화려함입니다. 하지만 시설팀은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요. 지난 35년간 묵묵히 뒤에서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편안하게 숙박하고, 식사할까 항상 고민했습니다. 조선호텔은 그런 저의 고민과 해결책에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창의력을 키워주는 호텔 덕에 지금까지 즐겁게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 노상덕 총지배인에게 감사패를 받고있는 김우천 팀장

일일 총지배인으로 나선 김우천 팀장은 아침 출근 후 미팅과 간단한 티타임 후 미디어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가 가장 신경을 쓰는 팽나무와 엘리베이터 점검에 나섰다. 프런트에 들러 직원들을 격려하고 나인스 게이트 그릴에서 예약장부 확인과 와인 상태를 점검했다. 피트니스센터에 들러, 새로 오픈한 PT룸의 상태도 확인했다.

“총지배인의 역할은 고객과 임직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전문 경영인입니다. 시설팀장으로서 현재까지는 고객들이 원하는 시설 부분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생각했다면 총지배인으로서는 호텔의 안전, 보안, 위생 및 청결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게 되네요. 총지배인은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한데 오늘 저는 부서 전체와 소통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수없이 그의 손길이 닿았을 조선호텔. 그 안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소를 묻자 김우천 팀장은 뷔페 레스토랑 아리아 창가자리를 말했다.

“아리아 정원을 구상할 때 사시사철 꽃이 피어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꽃땡깡’이라고 5월부터 12월까지 매일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어두었지요. 지난 35년이 그 꽃땡깡처럼 늘 조선호텔과 함께 한 것 같아 아리아의 그 자리를 제일 좋아합니다.”

이후 천운으로 완성한 그랜드볼룸에서 많은 조선호텔 직원들의 축하와 함께 감사패를 받은 김우천 팀장은 일일 총지배인으로서의 하루를, 35년간 조선호텔에서의 근무를 기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