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은 왜 선입견을 가지게 될까? 구수한 사투리와 편안한 표정을 가진 이종훈 총주방장을 처음 만났을 때 어렸을 때부터 오래토록 내공을 쌓은 요리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재미난 인생스토리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또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이종훈 총주방장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습니다. 국영수 중에서는 특히 영어를 잘했지요. 암기과목을 잘 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는데……. 부모님이 영어를 잘하니 영문과에 입학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 산업분야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상황을 본 적은 별로 없다. 이전에 인터뷰한 많은 셰프들도 인문학을 후배들에게 강조를 하며 여러 책을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종훈 총주방장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영문과를 졸업한 사람이다’라는 한 마디를 전했을 뿐이다.

“집안 형편이 조금 어려워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고무장갑 공장에서도 일을 해보고 배달도 해보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죠. 그런데 학비는 그렇다치고 생활비를 벌려면 식비를 해결해야하는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이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을 다닐 때 늘 요리와 함께 했었던 거죠.”

군대를 다녀와 일반적인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토익책을 들고 도서관에 향했다. 그곳에는 이종훈 총주방장과 똑같은 책을 가지고 도서관 자리에 앉아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수건과 칫솔이 자리에 놓여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람들과 경쟁에서 이기려면 토플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그런데 곧 이 모든 일들이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이 무서워졌어요. 이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단순히 살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도서관을 나와 책을 팔고 레스토랑을 전부 돌아다녔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제가 제일 좋았나를 생각해보니 조리칼을 들고 요리를 할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문을 두드린 한 레스토랑에서 그는 근무를 할 수 있었다. 저녁 9시부터 아침 7시까지.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과 수업 사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또 레스토랑으로의 출근을 준비했다.

“졸업할 때가 되자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그때까진 요리의 길에 확신이 없었어요. 영문과를 졸업한 20대 중반의 남자가 사회에 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서울을 갈까, 일본을 갈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당돌한 여자친구는 ‘그럴거면 서양을 가라!’라고 힘을 보태줬습니다.”

멀리 떨어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종훈 총주방장의 여자친구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그는 부족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영국행을 선택했다.

“외국을 나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저렴한 어학연수를 신청하고 비행기표값과 한 달 생활비를 들고 영국으로 향했죠. 버스를 탈 수 없어 템스강을 지그재그로 다니며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은 전부 찾아다녔습니다. 직접 수기로 쓴 이력서를 가방에 가득 들은 채로요. 일도 구해지지 않고 지쳐서 잠시 주저앉아 있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여자친구가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더군요. 생일인지도 모르고 그 날도 열심히 돌아다녔던 겁니다. 힘을 얻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커다란 건물이 보였습니다. 모자를 높게 쓴 직원도 보였고요. 막무가내로 들어간 그곳이 바로 ‘사보이 호텔’이었습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이었지만 절실함으로 인사과를 찾은 이종훈 총주방장은 첫 한 달을 무급으로 사보이 호텔 주방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적인 도시이기 때문에 이미 주방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그 안에서 무급인 이종훈 총주방장이 빛날 수 있는 건 오로지 성실함뿐이었다.

“저는 당시 사보이 호텔에서 요리가 내 천직이 맞는 지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임했지요. 국적이 달라도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어디나 똑같습니다. 솔선수범. 여러 업장에서 수시로 제 이름을 부를 정도로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꿈만 같던 한 달이 지났다. 사보이 호텔에서는 더 이상 그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무급이라도 괜찮다고 말한 이종훈 총주방장이었지만, 호텔 측은 단호했다. 감사가 들어왔을 때 무급으로 직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종훈 총주방장은 매달렸다. 이제야 겨우 요리가 적성에 맞는 것인지 보일 듯 말 듯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며칠 후 휴가를 다녀온 사보이 총주방장이 이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종훈 총주방장을 불러 "you can work."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기쁜 이종훈 총주방장에게 더 기쁜 소식이 들렸다. “with pay!” 그렇게 그는 사보이 호텔에서 2년을 지내게 됐다.

“사보이 호텔에서 2년이 지난 후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그곳에 남았다면 미쉐린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었겠지만 저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어요. 요리를 하겠다는 결심이 서면서 저는 한국인이니까, 한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어떤 외국인이 아무리 요리 실력이 뛰어나도 저보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일 순 없을 겁니다. 저 역시 많은 버터를 먹어보고 양식을 배웠지만 그들이 대대로 물려 받은 민족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인터컨티넨탈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끊임없이 조언해주던 여자친구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2005년 파크 하얏트 서울에 몸 담았던 그는 2006년 그를 가장 성장시킬 수 있었던 W 서울 워커힐에 입성하게 된다.

“W는 국내에서 굉장히 신선하고 낯선 콘셉트의 호텔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익숙한 스타일로 음식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없었지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총주방장님을 비롯해 선배와 함께 셋이서 뜻을 모아 주방을 바꿔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종훈 총주방장은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문 레시피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코스트를 계산하는 걸 일일이 문서화했다. 시스템을 바꾸는 과정에서 오버타임 근무가 잦아지자 위에서 지적이 들어왔다. 이에 대한 비용과 휴무 연차까지 계산해 몇 명의 인원을 추가 고용하는 것이 이익인지 판단한 문서를 인사과에 제출했다. 그렇게 두 명의 직원을 더 얻어 주방의 체계를 완성해 갔다. 스타우드의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그에게 많은 영감과 도움을 주었다. 비록 4시간 정도 밖에 잠을 자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무척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제 요리 원칙 중 하나가 ‘입으로만 요리를 하지 말자’입니다. 몇몇 선배들은 ‘달지 않고 짜지 않게, 실수하지 말고 맛있게 해’라고 조언하죠. 저는 그 말이 전혀 이해가 안 갔습니다. ‘한 번 보여주시겠습니까?’라고 대꾸했다가 밖으로 불려나가 혼난 적이 있었죠. 눈치가 빠른 편이라 그 뒤로는 별 말 하지 않았지만,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면 이런 불합리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2시에 음식이 나가야 하면 12시에 딱 나가야 하는 겁니다. 체계적인 흐름에서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총주방장은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전부의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여야 합니다. 주방 서랍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있는지, 주방 전체를 시야에 두고 있어야 하죠.”

노력은 결과로 나왔다. W 서울 워커힐은 기존의 호텔과는 달랐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됐던 주방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개성을 드러내보여도 된다는 걸 이종훈 총주방장은 깨달았다. 하고 싶은 요리를 하다보니 레스토랑은 성황이었다. 스타우드의 고가 평가에서도 두 번이나 1등을 차지했다. 세 번째 받게 되려는 순간이 문제였다. 세 번을 받게 되면 곧장 부총주방장 급으로 승진을 시켜야 하는데, W 서울 워커힐에서는 그 자리가 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때 총주방장님이 저를 불러 새로 오픈하는 호텔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주셨지요. 저도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남들이 2년이 걸린다고 해서 꼬박 2년에 걸쳐 그 일을 하는 건 바보라고 생각했거든요. 2년에 걸릴 일을 3개월로 앞당길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의 능력입니다. 저는 총주방장을 목표로 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호텔에서 부총주방장으로 새임무를 시작한다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5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두 가지 코스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콘셉트다

2011년 9월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가 오픈했다. 초석을 닦고 호텔이 자리매김하는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는 총주방장의 자리에 올라섰다.

“문득 어려서 요리를 좋아하고 요리만을 위해 살았다면 총주방장이 되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맛있는 요리를 고객에게 대접하기 위해서는 딱 하나, 최상급의 식재료를 활용하면 되는 부분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맛있는 요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코스트를 계산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조리 기술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지요. 내 가게, 내 레스토랑이라는 열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맥도날드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한 건 단 두 시간을 배우면 햄버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 덕분이다. 이종훈 총주방장은 주방의 모든 일을 파악하고 전체를 관장하면서 바쁠 때는 현장에 바로 투입되어 일을 할 수 있는 현장형 리더가 되고자 했다. 그의 이런 노력과 시스템 구축은 스타우드에서도 인정을 받아, 식재료 코스트로 문제가 된 태국의 한 호텔에 구조원으로 파견이 되기도 했다.

“그곳은 잘못된 운영으로 코스트가 57%까지 치솟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기존의 총주방장은 해임되고 다음 총주방장이 오기 전까지 제가 담당하게 되었지요. 손실이 난다고 팀원들에게 손실을 지적하면 안 됩니다. 물이 새는 수도꼭지를 잠가야지요. 태국은 더운 날씨로 전반적으로 일의 진행속도가 느렸습니다. 그렇지만 그쪽 맴버들과 회식을 하고 면담을 통해 각자의 파트에서 비용을 아껴야 하는 이유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접목시키자 코스트는 단숨에 37%로 낮아졌습니다.”

요리는 낭만이 아니다. 특히 호텔처럼 큰 기업에 속해 있다면 반드시 수익을 내야하는 하나의 사업이다. 이종훈 총주방장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스타셰프들의 화려한 면모에 이끌리는 젊은 예비 조리사들을 우려했다. 급여가 높지 않고 일의 강도가 세다보니 금방 지치게 되기 때문이다. 적성이 맞고 끝까지 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 그는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민족성입니다. 소울푸드라는 말이 있듯이, 제가 해장을 하기 위해 양식 보다는 한식의 국을 떠올리는 것처럼 요리사는 저마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한식 세계화를 위해 아프리카, 남미 등을 다니며 한식을 선보였습니다. 그들은 한식을 보고 극찬을 하지요. 하지만 그들이 그날 맛본 한식이 진짜 한식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서양화된 된장소스, 차가운 삼계탕은 전부 퓨전일 뿐이지 순수한 한식은 아니니까요. 저는 한식을 미니어쳐로, 그 고유의 맛을 손대지 않은 채로 코스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즈 부쉬나 타파스처럼 가볍게 맛볼 수 있지만 그 근본을 알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미식의 트렌드는 ‘재해석’이다. 현지에서 나는 식자재를 바탕으로 전통에 기대어, 새로운 맛을 표현하는 것. 그러나 이종훈 총주방장은 이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한다. 온라인이 발전하면서 유명한 셰프의 플레이팅과 방식이 전부 공유되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비슷한 형태의 음식을 먹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식이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서양기법을 가미한 ‘재해석’은 의미가 없다. 아니, 아직 ‘해석’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음식 문화를 ‘재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저의 꿈은 이번에 선보인 코스처럼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시아퍼시픽 총괄 컬리너리 디렉터가 되어 전 호텔의 체계적인 시스템과 음식에 관한 총괄적인 것을 리드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근본으로의 회귀, 한식을 제대로 선보이는 요리사가 되고 싶습니다. 셰프만이 만족하는 한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을 고스란히 유지한 순수 그 자체의 한식 말입니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