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놀이처럼, 땅 위에서 작게 쏘아진 하나의 빛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사방으로 만개한다. 한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하늘이기에 불꽃놀이의 절정이면 세상이 오롯이 빛으로 가득한 것만 같다. 클라이맥스. 일생의 최전성기. 호텔의 총주방장이라면 그 시기에 비유해도 되는 것일까? 방준원 총주방장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굉음을 내며 빠르게 상승하는 빛이다.

▲ 노보텔 앰배서더 수원 방준원 총주방장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게 한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지 축구를 했다. 미친 듯이 즐거웠으니 약간의 재능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초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연습을 끝마치고 집에 오면 어김없이 코피가 흘렀다. 일주일 내내 이어진 날도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가 가장 심했지요. 아들이 연습을 하고 온 날이면 온종일 휴지를 붉게 물들이니까요. 결국 어머니의 뜻대로 초등학교를 끝으로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중학생이 된 방준원 총주방장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어려서 일찍 꿈을 포기해야한 탓에 성숙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해냈다. 가장 먼저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보다는 활동적인 직업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요리의 길로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반대가 있었을 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요리를 몇 년 배우고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차리는 사업가가 될 줄 아셨던 거죠. 그런데 저는 축구처럼 요리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군대를 갔다. 전역 후 입사한 곳은 바로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이었다. 입사한지 5개월 만에 IMF 금융위기가 찾아왔지만 호텔 안에서 그 여파를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20년이 넘게 이어질 호텔 생활의 첫걸음이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은 서울 강서구의 독보적인 호텔이었습니다. 경쟁자가 없었지요. 프랑스 총지배인과 총주방장, 이어서 한국인 총주방장에게 일을 배우면서 정신없이 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5년이란 시간은 방준원 총주방장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처음 호텔에 입사했을 때 5년만 버티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후 더 큰 길로 나아갈지 말지 고민하고 결정하려던 순간, 아코르는 그에게 호주로의 연수를 추천했다.

“5년차 요리사인 제가 호주에서 6개월 정도 연수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시드니 근교의 브라이튼 비치에 위치한 노보텔에서 였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베이커리, 연회, 가드망제 등 전체 섹션을 다 돌아봤습니다. ‘어떻게 내가 뽑힌 거지?’란 의문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총지배인이 저를 높게 평가해준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주방에서 나가는 요리는 플레이팅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재료가 부족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방준원 총주방장은 후배들이 만든 부족한 가니쉬의 애피타이저 접시를 보고 새로이 요리를 만들었다. 손님을 위해 한정된 재료라도 최고의 접시를 완성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 음식을 받은 테이블에는 총지배인이 있었다. 그런 우연이 세 번이나 반복됐다. 매번 총지배인은 이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의 이름을 물었고 언제나 방준원 총주방장의 이름이 언급됐다.

“평소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거기에 직업이 셰프다보니 다른 셰프들의 플레이팅도 열심히 책으로 접했지요. 선배 중 한 분은 저에게 개성이 강한 플레이팅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저만의 색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죠.”

그렇다고 그가 직접 인테리어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롯이 디자인의 영역은 접시 위에서 일어난다. 방준원 총주방장에게 요리 외적인 취미를 묻자, 그는 여전히 ‘운동’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이후 축구를 관두고 취미 삼아 고등학교 때는 킥복싱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탁구를 시작했고요. 골프도 12년 정도 쳤습니다. 60대까지는 무리지만 70대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래서 함께 치는 분들이 많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축구선수가 되지 못한 게 한이었지만 지금은 셰프로서 즐거움이 큽니다. 골프도 똑같은 코스 18홀을 돌 때마다 다르듯이, 요리도 매 순간 새로운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의 이벤트, 연회를 끝마치거나 할 때 느끼는 희열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습니다.”

호주에서의 연수 덕에 그는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에 더 머물러야 했다. 그런 와중 총주방장의 공석으로 인해 일 년간 총주방장 대행을 담당하게 됐다. 서른 중후반에 맡게 된 중책에 방준원 총주방장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룹 내에서는 최연소 총주방장이 된 것이지요. 대행이었지만 뷔페 레스토랑, 한식당, 바, 로비라운지, 연회장 총 다섯 업장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총주방장이란 역할에 대한 이해가 없이 시작된 일이라 3년 동안 열심히 달리고 나서야 겨우 ‘총주방장’ 자리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죠. 행정이고 현장이고 밤낮으로 달렸습니다. 당시 소고기 파동이 있어서 코스트가 급 상승한 시절도 있었죠. ‘나는 참 재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총지배인이 좋게 봐주셨는지 이후 대행에서 총주방장 역할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강서 지역의 멋진 호텔인 노보텔 앰배서더 독산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급성장을 하지 못했다. 호텔업계도 마찬가지였다. 강북 강남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강서는 조금 변두리와 같았다. 방준원 총주방장이 처음 입사한 시기에는 서울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경기권 도시에 발전 속도가 밀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18년을 함께 한 호텔을 떠나 방준원 총주방장이 선택한 곳은 또 다시 노보텔, 그리고 수원이었다.

“서울에서는 어느 정도 고객의 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었다면 수원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합니다. AK플라자 등을 이용하시는 VVIP에서부터 호텔에 관심이 많은 일반 고객분들까지 그야말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은 고객층을 만나게 됐지요. 처음에는 호텔의 지역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제 요리가 변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따라 호텔에 방문해주신 단골손님이나 함께 했던 호텔리어 등 지인들이 항상 제 요리에는 저만의 색이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방준원 총주방장의 색은 무엇일까? 본인에게 물었지만 자신은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건 여느 미국 체인호텔과 다른 프랑스 감성의 아코르 기업문화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선보인 인생의 요리는 프랑스 요리 3대 진미로 불리는 ‘푸아그라’를 활용한 요리였다. 푸아그라 테린에 달콤한 포트와인 젤리를 겻들인, 우아한 플레이팅이 인상 깊은 한 접시다.

▲ 호두캔디와 포트와인젤리를 곁들인 푸아그라 테린

“아코르는 인재양성에 적극적이어서 젊더라도 빠른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저 역시 5개월이 됐든, 5년이 됐든 실력이 있는 요리사에게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여기에 인성까지 갖춘 친구는 어디를 가서도 크게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방준원 총주방장의 핵심은 꾸준히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디저트를 연구하다 초콜릿 부분에서 난관에 봉착하자 바로 월 80만 원의 학원에 다니는 실행력. 프렌치를 주로 하지만 중식과 일식, 아시안 퀴진까지 모든 요리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요리에 접목시키려 한다.

“20년을 같은 방식으로 조리한 음식은 아무런 개성이 없습니다. 중식이라고 중식기법에만 한정하지 말고 다양한 조리법을 시도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최근의 음식 트랜드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 방준원 총주방장은 학생들에게도 이 부분을 강조한다. 강의를 나가 학생들을 보면 중간이 없었다. 열정이 넘치고 배울 점이 있는 학생이 20%라면 나머지 80% 학생은 막연하게 요리계로 입문한 케이스였다.

“저는 학생들이 어떤 동기로 요리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의 분야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되겠다고 노력하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요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중식이든, 일식이든 하다못해 분식이든 현장에서 모든 걸 경험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웍을 돌리는 일이 재미있다면 중식이 맞는 것이고, 섬세한 칼질이 재미있다면 일식에 적성이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요리에 적성이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요리를 접하면서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요리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그 길을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조언해줍니다.”

그럼에도, 호텔의 주방은 프로의 세계다. 강의에서 뛰어난 열정과 재능을 보인 학생도 현장에서 도태되는 모습을 방준원 총주방장은 수도 없이 목격했다. 마치 유소년에서 두각을 보인 축구 선수가 프로무대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저는 재능이 즐거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코피를 쏟았으면서도 축구가 즐거웠던 소년이 지금은 주방에 서서 요리를 만드는 일에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낍니다. 계속 호텔 관계자에게 아코르의 총지배인 코스를 밟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매번 거절의 이유는 같습니다. 저는 요리가 즐겁습니다. 주방에 설 수 있으면서 더 큰 무대가 있다면, 그때는 주저 없이 도전할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he Story of Executive Chefs’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