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업무환경에 처하면 3개월 정도의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장으로 온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쉐라톤 그랜드 인천을 방문했다. 이제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강재현 총주방장은 분주하게 연회를 끝마치고 자리에 나왔다. 과거 안면이 있던 터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악수를 하면서 꽉 손을 쥐는 힘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힘이 넘쳤으며, 무엇보다 새로운 도전에 무척 즐거워보였다.

▲ 쉐라톤 그랜드 인천 강재현 총주방장

유년시절 꿈을 가지게 되는 동기는 여러 가지겠지만 멋진 어른이 곁에 있다면,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강재현 총주방장의 꿈은 그의 이모부에서 비롯됐다. 당시 명동에서 유명한 일식집 오너셰프였던 이모부를 보면서 강재현 총주방장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요리의 길로 가기로 결심했다.

“가족 모두가 저의 결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었습니다. 저를 제외하고 모두 사무직종에 종사를 했던 터라,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는 직업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이었거든요. 특히 아버지께서 반복적으로 업무만 하는 회사생활 보다는 기술을 배우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요리가 더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응원해주셨습니다.”

강재현 총주방장은 1993년 경희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신라호텔에 도전했다. 하지만 당시 채용규정상 군필자가 아니어서 주방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F&B 서비스를 하면서 호텔에 대한 꿈을 키웠다. 왜 하필 호텔이었을까? 강재현 총주방장의 롤모델인 이모부는 일식 주방장임에도, 그는 마음속에 호텔을 품었다.

“이건 저의 요리 철학이기도 합니다. 요리는 오감을 활용한 고귀한 예술의 총 집합체라고 생각했습니다. 흰 작업복을 입는 사람 중에 생명을 다루는 이가 많습니다. 의사도 그렇고, 요리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병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이니까요. 접시 위에 아름다운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양식이 저에게 더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호텔에 꼭 가고 싶었죠.”

학업 도중 군에 입대한 강재현 총주방장은 장성의 공관요리병으로 근무를 했다. 그때 모신 장군의 생활습관, 품성, 리더십에 대해 배우면서 요리뿐만 아니라 주방에서의 태도 또한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졸업과 동시에 리츠칼튼 서울에 입사한 강재현 총주방장은 닉스 앤 낙스, 뱅킷, 룸서비스 키친, 뷔페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등 여러 업장을 다니며 자신의 실력을 쌓았다. 리츠칼튼에는 훌륭한 프랑스 셰프들이 많아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무엇보다 리츠칼튼에서 가장 좋은 경험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리츠칼튼 하프문베이에서 보냈던 시간이다.

“이민국에서 붙잡힐 정도로 영어를 못했던 제가 그곳에서는 악착같이 전화도 제가 받고 동료들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곳의 요리와 언어, 문화 모두를 배우고 싶었어요. 리츠칼튼 체인에서만 25년 근무하신 사비에르 프렌치 마스터 셰프의 가르침과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풍부한 식재료를 접하면서 요리사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야말로 식재료의 천국이었다. 일조량이 많아 채소와 과일이 싱싱하고 맛이 진했다. 농사도 물만 있으면 2모작, 3모작도 가능했다. 인근 바다에 좋은 수산물이 풍부하게 잡히고, 무역항을 통해 세계의 우수한 식재료가 모였다. 이들을 활용하는 훌륭한 레스토랑도 많아 미주나 유럽 등지에서 온 다른 셰프들과 함께 미식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각 나라의 고유 음식을 만들어 서로에게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리고 그때쯤 그의 마음속에 작은 꿈이 하나 생겨났다.

“그 당시에는 내가 온전히 책임 질 수 있는 업장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꿈의 최대치가 수셰프(Sous Chef)였던 거죠. 그래서 리츠칼튼 포르투갈로 가기로 되어있던 일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럽 본토의 요리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접을 만큼, 강재현 총주방장에게 꿈을 이룰 기회가 주워졌다. 바로 새로 오픈하는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 수셰프의 자리를 제안한 것이었다. 당시 총주방장이었던 조지오 파팔라도가 3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 밑의 과장급이 모두 젊은 인재들로 채워진 것이다. 이때 함께 일했던 맴버가 바로 콘래드 서울의 이승찬 총주방장 등 현재 국내 호텔 주방을 이끌어가는 40대 초반의 셰프들이다.

“다이내믹. 이 한 마디로 주방이 모두 설명이 됩니다. 30대 초반의 젊은 한국인 셰프들이 모여 잠도 자지 않고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일했으니까요. 그야말로 정말 모두가 미쳐있었어요. 화장실에서 조는 건 일쑤고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는 손잡이에 기대어 잠들기도 했습니다. 오픈 초기인데다 그리고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럭셔리 브랜드, 그리고 어린나이에 주어진 책임감이 모두를 흥분상태로 만들었죠. 즐거웠습니다. 그만큼 보상도 빨리 받을 수 있었고요.”

지금도 당시의 낭만적인 주방과 요리를 기억하는 강재현 총주방장은 항상 역동적인 주방 분위기를 만드는데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오픈 키친을 선호하여 쉐라톤 그랜드 인천에서도 새로이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쉐라톤 그랜드 인천의 시그니처 레스토랑인 피스트에는 새로운 콘셉트인 ‘웍 앤 그릴’을 선보일 준비를 마쳤다. 차이나타운 등으로 유명한 인천 특유의 강화된 중식을 선보이며, 강재현 총주방장의 특기인 바비큐를 맛볼 수 있는 기회다.

▲ Charcoal grilled Meat & Seafood Platter, and Paella

“다른 음식이야 호텔 근무하면서 배울 수 있었지만 바비큐만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야외 행사를 하면서 바비큐에 대해 알아갔는데, 마침 대한아웃도어바비큐협회(KOOBA)를 알게 되어 활동을 하면서 현재는 심사위원직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참숯을 활용한 숯불구이만큼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그리고 그 한국적인 맛을 호텔에 계신 외국 고객에게도 선보이고 싶습니다.”

파크 하얏트에서 로비라운지와 뱅킷을 담당했던 강재현 총주방장은 ‘파크 하얏트 패밀리’ 중 가장 먼저 그 곳을 떠나오게 됐다. 그가 향한 곳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 어찌보면 글로벌 체인 브랜드에서 최초로 한국인 총주방장을 역임하게 된 건 강재현 총주방장이 아닐까. 하지만 반얀트리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배움의 영역이었다.

“일반적인 호텔은 고객의 요구사항이 많지 않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거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방문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달랐습니다. 클럽회원들은 자신의 재산 일부를 이 곳에 투자한 개념이기 때문에, 호텔이 잘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클럽동에 매일 같이 찾아주는 단골고객이 많아, 그들의 기호를 맞추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야했지요.”

한국인 클럽 회원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강재현 총주방장은 2012년부터 과감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바로 팔도음식 프로모션이다. 그 첫 번째로 제주를 선택한 강재현 총주방장은 다른 셰프와 매니저를 대동하여 제주를 찾았다. 제주 지역의 특산물과 음식을 맛보고 구매 루트를 확보, 호텔에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렇게 점차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를 거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후 로드샵에서 한식 뷔페 레스토랑이 히트하며 팔도음식 프로모션이 대중에게 많이 익숙해졌지만, 당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선보였던 팔도음식은 새로운 시도였다.

“반얀트리에서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는 아시아 퀴진 그라넘에서 선보였던 칠리크랩입니다. 이를 전수해준 싱가포르 출신 셰프는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절대 내놓는 메뉴가 아니라고 했어요. 칠리크랩은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하는데, 자신의 레스토랑은 이미 고급화되어 이를 내놓을 수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얼마나 맛있으면 호텔에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까?라는 콘셉트로 프로모션을 선보였고 큰 인기를 끌었지요.”

이 프로모션에 대해서는 한 가지 인상 깊은 추억이 있다. 보통의 호텔 프로모션의 홍보이미지는 음식 자체의 사진을 찍은 평이한 편인데, 이 칠리크랩 프로모션의 포스터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성이 입술에 가득 칠리소스를 묻힌 사진이 걸린 것이다. 당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의 안성태 총지배인과 강재현 총주방장은 이후에도 감각적인 F&B 프로모션을 꾸준히 선보이며 노력했다.

“2005년 저는 꿈인 수셰프 자리에 올라 잠시 허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열정을 잊고 살았던 거지요. 하지만 안성태 총지배인님을 만나고, 열정이 살아나면서 다시 또 다른 꿈을 꾸게 됐습니다. 리츠칼튼을 통해 메리어트에 근무하고, 파크 하얏트에서 하얏트를 경험, 그리고 리조트 개념인 반얀트리에서의 경력을 살려 더 높은 자리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글로벌 브랜드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스타우드 계열인 쉐라톤 브랜드에 입사한 강재현 총주방장의 꿈은 셰프 앤 비(Chef & B)의 직급에 오르는 것이다. 쉐라톤 브랜드에 있는 특수한 명칭의 이 자리는 셰프 겸 F&B를 총괄하는 자리다. 그 자리를 발판으로 호텔 업계 최고의 자리까지 노리는 것이 그의 새로운 목표가 된 것이다. 현재 쉐라톤 그랜드 인천의 리차드 수터 총지배인도 셰프 출신이다.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가까운 미래를 보든, 먼 미래를 보든 일단 꿈을 이뤄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작은 이익이나 행복을 위해 꿈을 이루는데 조금 주저하거나 멈춰서 있지는 않은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한참 성장한 2000년대도 호텔 셰프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었지만 2010년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꿈이 소박하다고 해서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소박한 만큼 더 손에 닿을 듯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노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꿈을 이뤘을 때 거기서 만족하느냐 아니면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이냐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강재현 총주방장은 이제 쉐라톤 그랜드 인천에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몇 개의 꿈을 이뤘는지 모른다. 지금의 자리에서 보이는 꿈을 먼저 이뤄야 한다. 그렇게 한 단계 올라서야 저 멀리, 그 다음의 꿈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