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 어려움에 직면한 청춘들을 대상으로 ‘스승’의 역할을 하는 이를 ‘멘토(Mentor)’라 부르는 게 익숙해졌다. 멘토는 그리스 신화 오디세우스의 친구인 ‘멘토르’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10여 년 간 돌보며 훌륭하게 어른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승의 의미인 멘토.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의 왕성철 총주방장도 지금의 자신이 있기 까지 이끌어준 두 스승을 떠올렸다.

▲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왕성철 총주방장

왕성철 총주방장은 호텔 주방에 들어서며 두 분의 멘토를 만났지만, 정작 호텔 업계로 첫 발을 내딛게 한 건 친구였다. 80년대 초 먼저 호텔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군 제대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던 그에게 먼저 호텔을 권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호텔 생활이 33년 넘게 이어질 지는 그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강북에 호텔이 3~4군데 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호텔은 물론 조리에도 아무런 경력과 관심이 없던 저였는데 친구가 적극적으로 권유를 했지요. 나는 아무런 기술이 없는데 괜찮겠냐고 했더니, 뭐 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는 거라고 저를 격려해줬습니다.”

지금이야 주방의 환경과 조직문화가 과거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당시 접시닦기부터 시작한 왕성철 총주방장이 기억하는 주방은 엄격하고 힘이 많이 드는 곳이었다. 그래도 함께 해주는 친구가 정신적으로 도움이 됐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였고, 호텔에서 나보다 직급이 높았지요. 지금 말로 하자면 퍼스트 쿡(First Cook)정도였죠. 그렇게 그 친구 덕에 요리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저는 남아 총주방장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그 친구도 진즉에 독립해 성공한 대표가 됐으니 서로 다 좋은 결과를 낸 것이죠.”

아무리 친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욕심을 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자리. 다행히 왕성철 총주방장에게는 요리에 본질을 가르쳐준 스승이 있었다. 그 분이 바로 왕성철 총주방장의 첫 번째 멘토가 되었다.

“요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니, 숲은커녕 나무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지요. 그 가운데 인내심을 가지고 저에게 요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스승님은 끊임없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음식의 맛과 식재료 본연의 특징을 살리는 방법, 요리사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기술과 열정까지. 연세에 비해 깨어있는 생각을 가진 유연한 분이어서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왕성철 총주방장의 요리에 대한 철학 중 하나는 바로 열정이다. ‘요리에 길을 묻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정과 재능이 없는 요리사는 존재가치가 없다’라는 세계적인 스타 쉐프 알랭 뒤카스의 말처럼, 그 또한 요리는 열정을 쏟아붓는 인생의 가장 큰 대상이자 멈출 수 없는 도전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사는 단순히 요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성이 깃든 요리를 통해 고객들과 교감하고 공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맛있는 요리의 기본적인 요소는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맛과 향을 최대한 살리고 요리사의 정성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들어가야 고객을 감동 시키는 최고의 요리가 탄생하는 것이지요. 이런 철학의 근본은 바로 첫 번째 스승님에게서 비롯됐습니다. 요리의 기본적인 요소인 좋은 식재료의 선택 및 사용, 요리사의 열정과 정성을 통해 요리의 맛과 시각적인 것이 결정 되고 만들어야 할 요리를 깊게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 여기에 요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매력과 색채를 그대로 살려내는 전통 그대로의 조리법과 그 조리법에 현대적인 맛을 가미해 글로벌화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80년대가 왕성철 총주방장이 어엿한 호텔의 셰프로 거듭나는 시기였다면 90년대는 총주방장이 되기 전 크게 성장하는 시기였다고 말한다. 지금의 무대인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로 오게 된 것도 90년대의 일이다.

“이 시기에 전임 총주방장인 두 번째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성실’ 그 자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분이었지요. 부지런하고 원리원칙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키는 총주방장이었습니다. 요리에서 꼭 들어가야할 것,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 등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절대 고객 앞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셨지요. 그런 완벽함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스승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제자는 어느새 시간이 흘러 옛 스승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 그때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기는 어떤 스승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왕성철 총주방장은 생각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자신은 확연히 성격이 다른 두 스승의 사이, 그 가운데쯤 위치했다고 말한다. 요리의 본질과 그 요리가 고객 앞에 나갈 때까지의 원칙주의,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셰프로 어느새 지금의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다.

“2001년부터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의 총주방장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굉장히 젊은 나이에 총주방장이 된 거라 많이 긴장도 했었지요. 처음 몇 년은 정말 기억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차츰 총주방장 업무도 익숙해지면서 굵직굵직한 국제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왕성철 총주방장이 기억하는 2000년대에는 해외와 관련된 일들이 많았다. 2008년 다국적 기업의 대규모 디너 행사에서 실수로 아랍계 고객에게 미트소스가 들어있는 요리가 나간 적이 있었다. 종교 관련 문제이기에 큰 컴플레인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발빠른 대체 메뉴와 진심어린 사과를 통해 행사 종료 후 더욱 돈독해지고 감사편지까지 받은 일을 그는 기억했다. 또한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당시 의전호텔로서 대통령실 경호팀, 식품의약품안전처, 농림수산식품부 등 5개 부처 정부 합동 위생 점검팀에서 2개월에 한 번 씩 세 차례 불시 점검을 받은 일도 떠올렸다.

“행사와 관련해서 식자재의 원산지나 유통경로, 조리과정, 보관 과정 등을 꼼꼼히 점검했는데 당시 우리 호텔이 모두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 직원들도 위생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으며 핵 안보 정상회의 의전 호텔로도 참여해 호텔의 전반적인 위생 관리의 능력이 향상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대전에서 개최된 ‘세계조리사대회(WACS, World Association of Chefs Society)’에 한국조리사중앙회를 대표하여 대회장으로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이외에도 왕성철 총주방장은 국내외 다양한 협회 및 단체에 소속되어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셰프테이블(Chef’s Table)‘은 호텔 요리의 트렌드 공유와 협력을 통하여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모색하고, 재능있는 요리사의 조기 발굴과 양성 및 사회 각계각층의 소외된 불우한 이웃들을 찾아서 회원이 가지고 있는 한 프로페셔널한 재능을 통해 사회봉사 활동을 목적으로 현직 국내 특급호텔 총주방장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됐다.

“셰프테이블은 현직에 있는 특급호텔 총주방장만 가입이 가능한 단체입니다. 그러다보니 위로는 선배, 아래로는 후배들이 있어 제가 회장을 역임하게 됐습니다. 현직에 있는 총주방장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를 가지고 재능을 사회에 공헌하자는 책임의식을 늘 강조하고 있으며 저 또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회장이라는 위치에서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셰프테이블은 2011년 설립 초기에 향후 운영 계획과 목표 이행을 위한 회의 및 플랜을 수립했다. 2012년부턴 아그로수퍼와 함께 ‘Agrosuper Star Chef Awards’ 돼지고기 요리대회, 꿈나무 요리사 장학 사업, 현직 2030 청년 셰프들과 총주방장들의 특별한 만남과 멘토링 사업 ‘Star Chef Summit’ 등을 통하여 스타 셰프의 진중한 요리 철학과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다.

▲ 봄철 전갱이 사시미와 제철인 쭈꾸미, 아귀간, 로브스터

현재 왕성철 총주방장은 호텔에서 식음과 조리를 총괄하는 본부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4월 오픈 예정인 뷔페 레스토랑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서 여러가지 준비하고 진행해야 될 업무가 많다. 조직 관리부분에서도 주방과 홀 조직의 구성원과 개개인의 특징이 다르기에 이를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남다른 노하우가 필요한 부분이다.

“호텔에는 하드웨어적인 부분과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이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상품은 바로 사람, 직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장 큰 경쟁력이지요. 남과는 다른, 특별한 서비스와 개성이 유기적인 팀워크 속에서 발현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차별화된 호텔의 아이덴티티와 더불어 직원들의 로열티가 유지될 수 있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였을까. 왕성철 총주방장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요리로 그간 기사에서 보기 힘들었던 일식, 그 중에서도 봄 제철에 맞는 요리를 선보였다. 항상 남과 다른 특별함을 추구하는 열정이 담긴 왕성철 총주방장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호텔아비아 애독자 중 한 명으로 그간 웨스턴이나 중식 등 다른 음식은 많이 접해볼 수 있었는데 일식은 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식을 선보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여기에 요리의 본질, 제철의 식재료를 활용한 최상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었기에 이렇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호텔아비아도 언제나 열정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특별한 매거진으로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
프리미엄 외식 산업의 리더, 특급호텔의 미래를 준비하는 ‘Top Chef Summit for Young’은 28년 연속 가축 질병 제로, 농축산 분야 세계 최초로 유엔이 인증한 지구 온난화 방지 기후협약 실천 친환경 방식으로 생산한 고품질의 프리미엄 돼지고기를 세계 45개국 특급호텔과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는 칠레 최대의 농축산 기업 ‘아그로수퍼’와 호텔 요리 트렌드의 공유는 물론 한국 식문화와 조리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특급호텔 현직 총주방장 모임 ‘셰프테이블’이 후원하고 있습니다.